회사를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는 누나가 유럽에 간다고 했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말이다. 부모님은 반대했다. 젊은 여자를 혼자 그 먼 곳에 보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내게 누나 보호차 같이 가라고 하셨다. 다녀오면 세상은 넓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싫었다. 사실 겁이 났다는 말이 더 가깝겠다. 해외라고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바다 건너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일이 전부였다. 당시에는 내 옆에 나와 동갑인 사람들 400여 명이 함께 갔다. 그리고, 우리를 챙기는 어른들이 있었다. 하지만 누나와 둘이서 지구 반대편으로 간다는 생각은 겁이 났다. 나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다. 많이 약화 되기는 했으나, 지금도 없지 않아 있다.

결국, 등 떠밀리듯이 유럽으로 떠났다. 약 5주 정도를 여행했다. 여행이 끝난 뒤 내게 남은 것은 추억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감이었다. 해외여행을 밥 먹듯이 다니거나 유학을 다녀왔거나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던 사람들에게는 비웃음을 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내게는, 그때의 여행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약 2년 전의 일이다.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몰랐던 사실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예전의 나였다면 결코 실행하지 못했을 결정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을 경험하기 위해 부산을 떠나본 적이 없는 내(심지어 군 생활도 부산에서 했다)가 서울로 무작정 떠난 일, 좋아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한 번 떠난 유럽 여행, 남들은 고개를 내저었지만, 계획했던 프로젝트를 시작한 일까지. 누나와 떠났던 그 여행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최근에는 다시 새로운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출근 둘째 날이었던가, 점심시간에 선배들이 곧 힘들어질 것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힘들어하는 일을 나는 생각보다 쉽게 해내고 있었다. 지난번에 했던 일과 비슷한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난 회사에서 했던 일보다 훨씬 쉽게 느껴졌다. 선배들은 대단하다고 해주었다. 기분이 좋다.

지금도 자주 생각하는 것이 있다. 만약 그때 누나와의 여행을 끝내 거부했다면, 내가 부산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지, 그저 하고 싶은 것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을지, 많은 것을 포기하며 모은 그 큰돈을 여행에 다 써버릴 수 있었을지. 이 생각을 할 때마다, 역시 사람은 무엇이든 겪어야 한다는 결론에 수렴하게 된다.



사람은 살면서 경험을 한다. 그 경험을 토대로 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될지 결정이 된다. 성선설, 성악설을 논하는 것도 오류라고 생각한다. 세 살짜리 아이가 친구의 물건을 뺏거나,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질러댄다거나 하는 것은, 그저 ‘모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도 경험에 의한 것이다. 오랫동안 인간 사회가 지속하면서 얻어진 결과를 토대로 선과 악이 나뉜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남의 물건을 빼앗는 것이 선이 되고 빼앗지 못하는 사람이 악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은 자의 답은,
경험한 자에 의해서
언제든지 틀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예전의 나였다면 결코 실행하지 못했을 결정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을 경험하기 위해 부산을 떠나본 적이 없는 내(심지어 군 생활도 부산에서 했다)가 서울로 무작정 떠난 일, 좋아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한 번 떠난 유럽 여행, 남들은 고개를 내저었지만, 계획했던 프로젝트를 시작한 일까지. 누나와 떠났던 그 여행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최근에는 다시 새로운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출근 둘째 날이었던가, 점심시간에 선배들이 곧 힘들어질 것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힘들어하는 일을 나는 생각보다 쉽게 해내고 있었다. 지난번에 했던 일과 비슷한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난 회사에서 했던 일보다 훨씬 쉽게 느껴졌다. 선배들은 대단하다고 해주었다. 기분이 좋다.

지금도 자주 생각하는 것이 있다. 만약 그때 누나와의 여행을 끝내 거부했다면, 내가 부산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지, 그저 하고 싶은 것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을지, 많은 것을 포기하며 모은 그 큰돈을 여행에 다 써버릴 수 있었을지. 이 생각을 할 때마다, 역시 사람은 무엇이든 겪어야 한다는 결론에 수렴하게 된다.

사람은 살면서 경험을 한다. 그 경험을 토대로 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될지 결정이 된다. 성선설, 성악설을 논하는 것도 오류라고 생각한다. 세 살짜리 아이가 친구의 물건을 뺏거나,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질러댄다거나 하는 것은, 그저 ‘모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도 경험에 의한 것이다. 오랫동안 인간 사회가 지속하면서 얻어진 결과를 토대로 선과 악이 나뉜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남의 물건을 빼앗는 것이 선이 되고 빼앗지 못하는 사람이 악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은 자의 답은,
경험한 자에 의해서
언제든지 틀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간혹 드물게 최악의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대단히 상식적이고 선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주위에서 보고 들은, 가까운 곳에서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인격이 형성된다. 부모의 인격이 중요한 데는 여기에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는 시대에 뒤처졌어.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는 탓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시대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확인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그저 보고 듣기 귀찮아서, 혹은 싫어서 하지 않은 탓이다. 요즘 같은 놀라운 정보화 시대에 시대의 방향을 찾아보는 일은 흡사 누워서 떡 먹기가 아니라 누워서 자는 일만큼 쉬운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무엇이 하고 싶은지 모르겠으면, 쉬워 보이는 일이라도 시작해볼 것을 추천한다. 쉬운 일이지만 하다 보면 실증을 느낄지도 모르고, 그래서 다시 어려운 일을 해봤더니 ‘어렵기는 한데 해보니 흥미는 생기더라’라는 생각이 들 때가 반드시 온다.

100년 남짓 사는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다 경험해보자. 언제 어디서든 했던 사소하거나 혹은 대단히 거대한 경험들을 통해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오감이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다섯 가지 감각으로 무엇이든 경험해 보라는 것이 아닐까.

느닷없이 마지막 한마디를 하자면, 나는 무신론자다. 신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도 무신론자일 테지만 또 모르지. 신을 경험하게 되면, 그날로부터 무신론자들을 깨부술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찰지도.




글. 성문경. 경험치 28